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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예 & 사회

[인생회고] 나는 조조가 아니라 유비로 살기로 했다: 42세, 어느 엔지니어의 19년 전쟁기

by 칼퇴리 2026. 1.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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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나는 유비다

내 인생이 한 편의 영화라면, 지금은 어떤 장면쯤 와 있는 걸까. 클라이맥스를 향해 달려가는 격정의 순간일까, 아니면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기 전 잠시 숨을 고르는 장면일까.

나는 삼국지를 읽을 때마다 늘 유비에게 이입했다. 천하를 호령하는 조조의 처세술이 뛰어난 건 안다. 하지만 단 한 번도 그가 부러운 적은 없었다. 우직하게 의리를 지키고, 바보 같을 정도로 사람을 믿으며, 느리더라도 올바른 길을 가는 유비.

나는 그렇게 살고 싶었다. 아니, 그렇게밖에 살 수 없었다. 1985년생, 올해로 마흔둘. 2007년 대학교 2학년, 남들보다 조금 일찍 사회라는 전쟁터에 던져진 이후 지금까지 나는 줄곧 '정직함'이라는 무거운 갑옷을 입고 살아왔다.

제1장: 기름밥과 PLC, 나의 전쟁터

나의 무기는 PLC였다. 전기 설계부터 시작해 PLC 프로그램, 시운전, 기획, 개발까지. 자동화 라인이 내 손끝에서 생명을 얻어 움직일 때마다 나는 살아있음을 느꼈다. 현장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0과 1, 입력과 출력. 내가 땀 흘린 만큼 기계는 정확하게 보답했다.

그곳에서 나는 장비(張飛)였다. 누구보다 기술에 자신 있었고, 문제가 생기면 물러서지 않고 맞서 싸웠다. 수많은 도전을 해왔고, 수많은 싸움을 이겨냈다. 내 전문성이 업그레이드될 때마다 내 자존심도 함께 높아졌다. "기술은 내가 제일이다"라는 자부심, 그것이 나를 지탱하는 힘이었다.

하지만 회사는 기술만으로 돌아가는 곳이 아니었다. 어느 순간부터 내 주변에는 '조조'들이 득세하기 시작했다. 윗사람의 비위를 맞추고, 정치질로 자신의 무능을 덮는 사람들. 나는 그게 너무 싫었다. 아니, 역겨웠다.

"저게 맞는 거야? 정의란 게 있긴 한 건가?"

후배들이 들어오고 조직이 커질수록 나는 점점 외딴섬이 되어갔다. 나는 아부를 못 한다. 정치를 혐오한다. 알면서도 안 하는 것이 내 마지막 자존심이었다. 그 대가는 혹독했다.

제2장: 아버지의 그림자, 어머니의 등

내가 이토록 지독하게 '열심'을 고집하는 이유는 어쩌면 공포심 때문일지도 모른다. 내 기억 속 아버지는 늘 집에 있었다. 무기력하게 놀고 있는 아버지, 그리고 친척들과의 싸움 속에서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두들겨 맞던 어린 나. 그 기억은 여전히 트라우마처럼 내 뼛속에 박혀 있다.

"나는 절대 아버지처럼 살지 않겠다."

그 맹세가 나를 채찍질했다. 반면, 나의 어머니는 나의 영웅이었다. 외삼촌이 일찍 돌아가신 후, 외숙모와 사촌들까지 총 7식구의 생계를 책임지신 분. 회사를 다니며 그 많은 식구의 살림을 도맡아 하셨던 어머니. 당신의 젊음을 갈아 우리를 키워내신 어머니는 지금 온몸이 아프시다.

고1 때 다시 합친 7식구의 집. 아버지가 노는 꼴을 보기 싫어 차라리 우리끼리 따로 살고 싶다고 생각했던 어린 날의 푸념. 그 결핍과 상처가 어른이 된 나를 쉬지 못하게 만든다.

처가 식구들이 "더우니 하지 마라, 추우니 하지 마라, 힘들면 하지 마라"고 할 때마다 나는 숨이 막힌다. '그럼 언제 합니까? 인생은 기다려주지 않는데.' 처제의 이직 고민도, 장모님의 만류도 나에겐 나태함의 변명처럼 들린다. 나는 춥다고 등산을 포기하는 사람이 아니다. 차가운 산바람을 맞으며 살아있음을 확인해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이다. 그게 나다.

제3장: 부러진 칼, 그리고 번아웃

그렇게 앞만 보고 달렸는데, 작년 말 내 인생은 낭떠러지로 곤두박질쳤다. 회사에서의 안전사고. 이어진 차장 진급 누락. 그리고 여름 건강검진에서 받은 '갑상선암' 진단.

수술대 위에 누웠을 때, 나는 처음으로 체념이라는 감정을 배웠다. 회사는 사람을 자르지 않지만, 그렇다고 사람을 귀하게 여기지도 않았다. 내가 목숨 걸고 지켜온 기술력보다, 팀장의 비위를 맞추는 말 한마디가 더 중요한 조직.

"우리는 언제쯤 진짜 기술이 대우받는 회사를 만들 수 있을까?"

예전에 방문했던 한 중견기업 사장님의 브리핑이 떠오른다. 작은 회사였지만 기술력 하나는 최고였던, 리더의 품격이 느껴지던 그곳. 나도 그런 리더가 되고 싶었는데. 현실은 개판인 회사에서 입지가 좁아지는 나 자신을 견디는 것뿐이다.

번아웃이 왔다. 정말 다 그만두고 싶다. 열심히 살았는데, 남은 건 병든 몸과 상처받은 마음뿐인 것 같아서.

에필로그: 다시, 유비의 길을 묻다

요즘 후배들을 보면 고민이 많다. "선배님,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라고 그 눈동자들이 묻는 것 같다.

요령 피우고 정치 잘해서 편하게 살라고 해야 할까? 아니면 나처럼 미련하게 기술만 파고들며 정직하게 살라고 해야 할까. 내 인생이 증명해주지 못하는데, 감히 그들에게 정직을 강요할 수 있을까.

하지만 나는 안다. 다시 태어나도 나는 조조가 될 수 없음을. 나는 꾀를 부릴 줄 모르고,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며, 내 사람을 지키기 위해 무식하게 칼을 드는 유비다. 비록 천하통일은 늦어질지라도, 비록 몸은 상처투성이일지라도.

나는 다시 신발 끈을 묶는다. 나의 사랑하는 아이들과 아내, 그리고 존경하는 어머니를 위해. 나를 조금 내려놓기로 한다. 인정받으려는 욕구도, 세상을 바꾸려는 욕심도 잠시 내려놓는다.

다만, 이것 하나만은 블로그에 기록해두고 싶다. 비록 세상이 요령과 아부를 원하더라도, 누군가는 묵묵히 기계를 돌리고, 전선을 연결하고,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다는 것을. 그 바보 같은 정직함이 있기에 세상이 멈추지 않고 돌아간다는 것을.

19년 차 엔지니어, 42세 가장. 나는 오늘도 나의 전쟁터로, 그러나 어제보다는 조금 더 가벼운 마음으로 출근한다.

이것은 나의 패배 기록이 아니다. 진정한 승리를 위해 잠시 숨을 고르는, 나의 생존 일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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